설명: 해당 기록들은 제37기지 격리실 내부의 SCP-1747-KO 개인 소지품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해당 자료의 확인을 요청하자 SCP-1747-KO는 흔쾌히 수락하였으나, 차원 위상적으로 격리된 곳에서 재생할 것을 추천하였다.
다음 기록들은 발견된 기록들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음성 기록 1747-KO-BAC-1
유진?1 기지 아무도 없나?
정말 다 죽은거야? 재단이 이런 것도 대비를 못해?
……그럴리가 없어. 어딘가 남은 사람들이 있겠지?
무한히 뿜어져 나오던 가루가 지금은 뚝 그쳤지만, 날 모르던 사람들이 어딘가 있겠지.
설마 정말 다 죽진 않았을거야…….
음성 기록 1747-KO-BAC-2
모든 게 끝장났다.
결국은 내 스스로 인류의 역사를 끝내버리고 말았다.
재단은 어째서 나를 내세웠지?
내가 나서게 하지 말라고 누누히 이야기 했건만!
내 알량한 힘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이제야 알았겠지? '그 녀석'을 막으려고 장막도 포기하고 전 인류에게 싸움을 광고해야 했으니.
난 절대 영웅이 되어서는 안 됐는데 무슨 지구 대영웅으로 만들어버렸고, 그러고도 30일 밤낮 동안을 싸워야 했으니 빌어먹을 가루가 지구 전체를 뒤덮었지.
그 년이라면 이 재앙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루에 오염되기를 기다렸다가 한 번에 터뜨릴거라고도 분명히 경고했잖아.
어차피 못 막는다고 해도 이게 최선이었나?
결국 나나 재단이나 끝까지 그 년의 농간에 놀아 것 밖에 안 된다.
음성 기록 1747-KO-BAC-3
……정말 아무도 남지 않았다.
가루는 터지면서 근처의 물건들도 소멸시켜버린다.
사람들이 많던 곳은 정말 지우개로 지운 것 처럼 삭제되어 버렸다.
[침묵]
며칠이나 지났지?
이정표가 될 만한 것도 보이질 않는다.
[침묵]
설마 내 상처에서 가루가 나오기를 원하게 될 줄이야.
[침묵]
……그래, 정말 유진 녀석의 말대로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생각난다.
SCP-2000……. 그 녀석은 이 상황을 예상하고 힌트를 준 걸까?
음성 기록 1747-KO-BAC-4
2000으로 향하고 있다.
다행히 '그 놈'과 싸운 곳이 미국이라서 바다를 건널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그 놈'의 파편인지 분열체인지 하는 놈들이 남아서 돌아다니고 있다는거다.
보이는 족족 죽이고 있는데 이전과 달리 죽이기가 쉽지 않다.
가루가 전혀 안 나오니 그럴 수 밖에.
그러고보니 이 근처 지형이 참 혼란스럽다.
온천인지 뭔지 뜨겁고 알록달록한 호수들이 있는데, 주변 나무들이 말라 죽어 있는 걸 봐선 별로 좋아 보이진 않는다.
숲인지 산인지 나무가 많긴 한데, 그럼에도 황량해 보이기만 하고 특별히 뭔가 보이진 않는다.
분열체들을 쫒다 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음성 기록 1747-KO-BAC-5
놈들이랑 며칠 째 술래잡기나 하고 있다.
대체 몇 조각으로 찢어진 건지 죽여도 죽여도 나오는데, 3마리 이상이 몰려오면 나도 도망가야 했다.
안 먹는다고 죽진 않지만 배는 고픈데 여긴 먹을 것도 잘 없고 미치겠다.
음성 기록 1747-KO-BAC-6
무언가 찾은 것 같다.
황량한 숲 가운데에 낮은 건물을 발견했다.
한 놈이 그걸 부수고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던데, 팔다리 다 뜯어서 몸통만 남겨 놓았다.
이 놈들은 먹어보려 했는데 도저히 못 먹겠더라.
아무튼 그 건물 흔적을 들여다보니 무슨 땅 속으로 들어가는 터널이 발견되었다!
재단 놈들이 개미처럼 땅속에 기지 짓는 걸 잊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렇게나 파고 들어갔다가 중요한 게 고장 나면 안 됐겠지?
음성 기록 1747-KO-BAC-7
미치겠다.
안에는 무슨 공장같은게 있는데 엄청나게 복잡하다. 나 이런거 잘 모른다니깐.
더 불행한 건 이 안에 있던 사람들도 가루를 피하지 못했다는 거다. 투과력이 이 정도였나?
이 사람들이 터지면서 몇 군데 파손한 거 같은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뭔가 세상을 되돌린다더니 이래서는 못하겠는데.
음성 기록 1747-KO-BAC-8
일주일째 이 시설을 탐사하고 있다.
공장?을 가동시킬 방법을 찾고 있는데 잘 모르겠다.
뭔가 인증하라고 하는 기계는 찾았는데, 내가 아니랜다.
이걸 성공해야 될 거 같은데, 여기 있던 사람들이 쓰던 물건들 가져와도 소용이 없다.
지금은 포기하고 2000이라는거나 찾고 있는데 그게 도대체 뭔지도 모르겠고 별다른 건 보이지도 않는다.
유진 녀석, 좀 도움 되는 걸 알려주던가.
음성 기록 1747-KO-BAC-9
여기 온지 열 번째 겨울이 왔다.
굳이 녹음할 이유도 없긴 한데, 10번째는 특별하니까 켜봤다.
내가 뭘 한다고 되는 것도 없고, 요즘은 그냥 나 혼자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있다.
여기 있는 것도 지겹긴 한데, 딴 데 갔다가 사람들 있던 흔적 보니까 속 터져서 돌아왔다.
뭐, 혹시나 여기서 뭐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냥 여기서 눌러사는 중이다. 끝.
음성 기록 1747-KO-BAC-10
17번째 여름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지하 시설에 숨겨진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예 땅을 파서 기지 주변을 다 드러내려고 한다.
시간도 많고 힘도 많은데 못 할 것도 없지.
음성 기록 1747-KO-BAC-11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세상에.
지금은 20번째 가을인데, '그 괴물'이 나온 지 딱 20년이 되었나 보다.
기지 상부는 어느 정도 파냈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아가 보니까 중심부의 패널에서 이제 인증 없어도 가동 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
냉큼 가동 시킨다고 했더니 시설 전체가 움직이고 있다.
뭐가 만들어지려나?
음성 기록 1747-KO-BAC-12
공장을 가동시킨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게 사람을 찍어내는 공장이더라.
세상을 되돌린다더니 시간을 되돌리는게 아니라 새로 만드는 거 였다.
하루에 몇만명 씩 새 사람들이 쏟아지는데, 만들어진 사람들은 저마다 재단의 전문 지식들을 다 갖고 있어서 자기들끼리 이것저것 뚝딱뚝딱 만들고 있다.
거 참, 내 인생도 상당히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는데 여기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다.
아무튼 새로운 재단 사람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또 가루 때문에 다 죽으면 안 되니까 일단 숨어서 지켜보는 중이다.
음성 기록 1747-KO-BAC-13
큰일 났다.
분열체 세 마리가 시설을 공격해왔는데, 재단 놈들이 좀처럼 못 막더라.
멸망 전에도 어쩌지 못했는데 이놈들은 뭐랄까, 그냥 못 이기게 되어있는 느낌?
재단이 막지 못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었다.
확실히 전 인류의 소망을 모은 지구 대영웅 쯤 되어야 겨우 비벼볼 만 했다.
이번에 분열체들도 덩치 2m밖에 안되는 조각들인데도 재단이 속수무책이더라.
또 다 죽을 판이 되어서 어쩔 수 없이 나섰다.
세 마리는 나도 힘들었는데 한 마리 죽이니까 또 가루가 쏟아져 나왔고, 결국 세 마리 다 내가 해치웠다.
근데 그 과정에서 근처에 있던 두 명이 가루에 오염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둘 다 납치해서 죽여버렸다.
음성 기록 1747-KO-BAC-11
재단 놈들이랑 접촉했다.
어쩐지 가루가 가라앉지 않더니, 그 새 나에 대해서 알아냈더라.
하긴, 30일 넘게 나에 대해서 온 세상에 떠들어 댔는데, 조금만 조사하면 남아있는 기록을 찾을 수 있겠지.
그래도 재단이긴 한지 자기들끼리 날 격리해 놓고 자기들끼리 기억 소거하고 알아서 잘 하더라.
그리고 이 시설 자체가 SCP-2000이었다!
여기서 만들어진 사람들이 세상을 원래대로 복구 시킨다고 한다.
이런 게 있으면 내가 그 동안 한 걱정은 다 뭐였지?
음성 기록 1747-KO-BAC-12
O5라는 놈들하고 협상을 했다.
재단 녀석들은 여전히 분열체들을 이기지 못하고 있어서 세상을 복구하기 어려우니 나에게 놈들의 말살을 부탁했다.
그리고 놈들과 싸울 때 외에는 세상을 복구할 때 까지 재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해주겠다고 한다.
기억만 잘 지우면 어떻게든 되긴 하겠지.
근 20년 보단 훨씬 덜 심심하겠어.
음성 기록 1747-KO-BAC-13
바빠서 한 동안 녹음을 못했다.
싸움만 할 줄 알지 일자무식인 내가 재단 인원으로 활동하려면 배울게 많더라.
현재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고 있는데, 물리쳐야 할 분열체들도 많고, 격리 파기 된 기지들도 복구해야 한다.
웃긴 게 내 가루 때문에 무력화 된 SCP도 많더라. 예를 들면 동양 쪽 SCP는 거의 반 이상 줄었다고 한다.
같이 활동하는 인간들은 새로 만들어져서 복구에만 전념하고 복구가 끝나면 기억을 싹 지우고 기존에 있던 인간들의 기억을 덮어 씌워져서 배치 될 재료이자 소모품들이다.
언제든지 죽을 수 있고 그러면 바로 새로 만들어져 대체 된다는 데, 그런 것 치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다.
유머도 있고, 슬픔도 있고.
친해진 놈들도 몇 있는데 참 씁쓸하다.
음성 기록 1747-KO-BAC-14
전 세계의 분열체를 40%정도 죽였다.
같이 와서 전투 보조한 녀석들은 가루를 일으켜서 또 기억이 삭제되었다.
맨날 처음 싸우는데도 잘 하는 게 대견하긴 한데, 맨날 기억 지우다가 뇌 망가지는거 아닌가 몰라.
(다른 사람의 목소리)벤슨 녀석, 세 번째 대체품인거 모르셨어요?
뭐?
(다른 사람의 목소리)지난 번 벤슨은 자다가 뇌출혈로 급사해서 새 벤슨이 왔는데요. 온 지 3일 됐어요.
젠장……. 너도 엿듣지나 말고 빨리 기억 지우러 가라.
[녹음기 강제 종료]
음성 기록 1747-KO-BAC-15
드디어 끝났다.
호주에서 마지막 분열체를 죽이는데 성공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호주만 재건하면 세계 재건도 끝난다.
이제 나는 별로 할 일도 없으니 놀면서 일하는 녀석들이나 괴롭혀야겠다.
벤슨 녀석은 하도 괴롭혔더니 이젠 싸웠던 기억을 안 지워도 가루가 안 나오더라. 하하하.
음성 기록 1747-KO-BAC-16
이제 복구가 끝나간단다.
그 동안 재미있었다.
오랜 세월 파괴만 했던 나에게 세상을 도로 만드는 경험은 새로웠다.
하지만 복구가 끝나면 그 동안 같이 일하던 사람들의 기억들은 싹 사라져버리고, 복구 이전의 일상으로 배치된다고 한다.
결국은 또 내가 알던 사람들이 사라져버린다. 이건 내 입장에서 또 다른 종말 아닐까?
같이 기억을 잃어버리면 좋을텐데, 나에겐 기억소거제가 듣지 않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끝내는 자' 인가보다.
나 스스로는 끝나지 않고 끝을 일으키기만 하는.
그래도 그 년이 지워버렸던 세상을 도로 그려내었으니 처음으로 크게 한 방 먹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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